책소개
베르댜예프는 러시아에 수립된 공산주의 정권만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파시즘, 그리고 1930년대 초에 독일의 집권 세력이 된 국가사회주의를 주목하면서 자신의 역사철학적 관점을 더욱 발전시켜나갔다. 그 결과 그의 역사철학을 담은 대표적인 저술인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이 1934년에 출간되었다. ‘자유의 포로’라는 별칭을 지닌 베르댜예프 사상의 핵심 개념은 ‘자유’와 ‘인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이 두 개념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다.
베르댜예프에 따르자면, 인격은 신의 형상을 닮은 모습이면서도 자유를 그 본질로 삼고 있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인 차원이나 사회경제적인 차원으로 국한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영원한 근거였다. 이 책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듯이, 소련에서 성립된 공산주의 체제라든지 이탈리아에서 성립된 파시즘 체제라든지 독일에서 성립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하나같이 인격의 자유를 억누르는 집단주의의 산물로서 심지어 광기에 사로잡힌 형태라고도 볼 수 있었다.
베르댜예프는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에서 공산주의와 파시즘, 그리고 국가사회주의만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소위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도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다. 실업 문제 등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익명화된 자본주의는 ‘생산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을 위해서 존재하는’ 결과를 낳았다. 베르댜예프의 냉정한 평가에 따르자면, 현대의 기술 발전으로 인하여 인간은 기계에 예속되어 전일성(全一性)을 상실하고 파편화되어 버렸다. 그는 현대 사회 인간이 처한 위기의 탈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문제의 근원인 인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길을, 인격과 공동체의 원칙을 결합하는 ‘인격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200자평
베르댜예프가 바라본 인간의 운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는 현대 사회 인간이 처한 위기의 탈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문제의 근원인 인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길을, 인격과 공동체의 원칙을 결합하는 ‘인격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지은이
니콜라이 베르댜예프는 1874년에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전통적으로 군인을 배출해 왔기 때문에, 그도 유년 시절 사관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적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부모의 허락을 받아 사관학교 생활을 중단하고 키예프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을 하던 189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가담해 반정부 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볼로그다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곧 유물론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극단성과 파괴성을 우려하면서, 1917년에 발발하게 될 러시아 혁명의 성격을 예견했다.
학문적 명성 덕분에 러시아 혁명 직후인 1920년에는 모스크바대학에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정권은 사회주의 건설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해 일군의 지성인들과 함께 그를 국외로 추방하고 말았다. 그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종교철학 아카데미를 설립해 활발한 강연 활동과 저술 활동을 했다. 그는 추방 시기에 자유와 인격에 대한 해석을 역사철학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그리하여 ≪역사의 의미≫, ≪새로운 중세≫, ≪러시아의 이념≫,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과 의미≫ 등과 같은 명저들을 출간했다.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에서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 공산주의, 히틀러 치하의 독일 파시즘 체제, 그리고 서구의 자유주의 체제를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옮긴이
조호연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러시아국립사범대학교 러시아사학과에서 <1890년부터 1904년 7월까지 러시아에서의 자유주의 운동의 형성>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학문적 관심은 세계사 속에서 러시아 및 러시아 역사가 지닌 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관념론의 문제들”의 출간과 그 의의>, <20세기 러시아사에서의 국민 통합과 민족주의>, <1905년부터 1917년까지의 러시아 자유주의 연구>, <유라시아주의 운동의 의미>, <러시아 사학사에서 키예프 루시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 <페테르부르크 역사학파의 성립과 발전>, <스탈린 시대의 역사학>, <전환기의 러시아와 역사학> 등 러시아 사상사, 러시아 사학사, 그리고 러시아 자유주의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한 논문들을 다수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러시아의 기록관에서 연구한 경험을 통하여, <러시아 혁명 이후부터 1930년대까지의 소련의 기록 관리 제도> 등 소련과 러시아의 기록학 현황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러시아 신분사≫(한길사), ≪유럽 근현대지성사≫(현대지성사), ≪역사관의 유형들≫(IVP) 등 러시아사 및 유럽사와 관련된 몇 권의 책을 단독 혹은 공동으로 번역했다. 역자는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대학교, 한동대학교, 공군사관학교 등에서 역사학을 강의한 바 있으며, 현재는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경남대학교 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차례
제1장 역사에 대한 심판: 제1차 세계대전
제1절 현대의 문제
제2절 세계대전의 결과
제3절 위기의 근원
제2장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운명
제1절 휴머니즘과 짐승주의
제2절 비인간화와 자유의 모순
제3절 공산주의와 파시즘
제3장 세계 속의 새로운 세력들
제1절 대중의 등장
제2절 기술, 실업, 그리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제3절 국가주의와 카이사르주의, 동방의 민족들
제4장 문화와 기독교
제1절 귀족주의적 문화 원칙과 지식층의 운명
제2절 기독교에 대한 심판
제3절 새로운 영성에 대한 탐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휴머니즘의 위기가 아니다. 휴머니즘의 위기는 부차적인 것이며, 진정한 문제는 인간의 위기이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전처럼 인간이라고 불리게 될 것인지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문화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비인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도덕의식이 비인간화되고 있다. 인간은 높은 가치를 가진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하등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25쪽
현대의 집단적인 광기, 잡신 들림과 우상숭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적인 힘을 동원하는 것뿐이다. 사회 조직만으로는 세계와 인간의 혼란스러운 몰락을 막을 수 없다. 세계는 조직적이고도 기계화된 혼돈 상태로 변화될 수 있는데, 이런 혼돈 속에서는 아주 끔찍한 형태의 우상숭배와 악마 숭배가 자행될 것이다.
-141쪽